질문이 사라진 사회
"질문 있나요?"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각자 짐을 싸고 집에 갈 생각에 정신없다.
반면 외국인이 절반 가까이 되는 원어 교양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이 수두룩하다.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받아적는 학생들도 없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우르르 찾아가 각자 궁금했던 것들을 쏟아낸다.
방학 때, 유튜브에서 본 스탠퍼드 대학교의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 강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해 강의 도중 그냥 말해버린다.
스탠퍼드 대학생이라고 해서 질문의 수준이 그리 높지도 않다.
가끔씩은 "이런 걸 질문한다고?" 싶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질문도 섞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내가 그 강의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질문을 장려하는 분위기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잘 모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르니까 질문을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높은 학구열을 가진 학생들이 분위기를 수업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떨까?
우리는 수업 도중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하지 않고 가장 먼저 ChatGPT에게 물어본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수업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서?
다른 학생들이 눈치 보여서?
바보 같은 질문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교수님께서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까 봐?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질문의 중요성’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승건 토스팀 리더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그냥 열심히 살아간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요구하는 '행복할 자격'이 너무 많다.
- 부모님께 좋은 자식이 되는 것
- 돈을 많이 버는 것
- 업계 최고가 되는 것
- 멋있는 차와 집을 갖는 것
- 사회에서 유명해지는 것
- 쿨한 친구로 인식되는 것
사회가 인정하는 모습과 부모가 원하는 욕망이 나의 욕망으로 사회화된다.
우린 이러한 기준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묵살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자격 요건따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