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에 가치를 매기는 사람

어느덧 입대한 지도 19개월이 지났다. 전역을 ‘딱 1달’ 남겨둔 오늘이 한 해를 돌아보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군대라는 환경은 사회에서 좋았던, 싫었던 모든 기억을 그리워지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회상하기 위해 2년째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2023년의 군 생활이 녹아든 일기를 보면 힘들고 아찔했던 순간들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일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슬럼프가 내게도 찾아왔다. . . . 바다 위에서 일주일 이상 보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렵다. 공부를 하기로 여러 번 마음먹었지만 이내 곧 포기했다. 잦은 출항, 실전 훈련, 극한의 추위와 싸워야 하는 항해 당직 등 나를 지치게 하는 요소들을 매일 원망했다. 환경 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가장 많이 했던 것이 '환경 탓'이었다. 그러던 도중, 준식이라는 새로운 후임이 들어왔다. 그는 내가 탓하기만 했던 모든 환경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심지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와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했다. 매일 피곤함에 찌든 채 하루 8시간씩 당직 근무를 하면서 말이다.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천동설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깨지고 사람들이 지동설을 믿기 시작한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그런 관점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책을 읽으며 사색을 즐기는 준식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 환경 탓을 해온 자신을 반성했다. ‘이래서 안 돼’라는 생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누군가는 군 생활이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실제로 군 생활은 단순 반복 노동에 불과한 일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없는 경험일지라도, 그 경험에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원치 않는 경험에서도 배움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움은 그 경험을 오랫동안 곱씹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 . . 얼마 전, 휴가를 나와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대외 활동 연말 파티에서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 뒤,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승준이 형과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보도로 걸어가는 길에 나눈 대화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승준이 형은 내게 “해외도 많이 가보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필요해. 그러나 그 경험을 ‘왜 하는지’를 항상 생각해.” 라고 말했다. 맞다. 아무리 주목받는 세계 1위 글로벌 기업에서 인턴십을 해도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험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열심히 일한 것뿐이다. 반면,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내가 그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배웠는지 나만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면, 설득력 있고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 .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그의 저서 ‘슈독’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리기는 고통이 크고 보상도 적고 목적이 없는 운동이다." "하지만 러너들은 알고 있다.” “오로지 달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다.” “오직 자신만이 결승선을 정한다.” . . .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내가 쓸모없다고 여길 뿐이다. 나의 경험에 가치를 매기는 사람은 친구도, 상사도, 면접관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