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는 의무 복무를 위해 해군을 선택했다.
해군에 입대한 후,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사람이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이 중요하지만 반복적인 단순 노동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아직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1. 비용 절감
내가 근무했던 전투함 외관 전체를 페인트 도장을 하려면 갑판을 모두 뜯어내야 한다.
대략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2~3주 간의 기간동안 매일 일해야 한다.
기계로 대체하면 며칠 내로 가능한 일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요즘은 병사들의 인건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2025년 병장 기준 월급 150만원)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크게 보면 손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2. 낮은 기술 접근성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컴퓨터로 완전히 대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다.
사실 이 문제는 AI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의견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소득 차이에 따른 정보 불균형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이미 곪아 터진 사회적 문제다.
3. 기존 관례에 대한 존중
존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고집에 더 가깝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더 나은 솔루션을 생각해낼 수 없다면 기존의 관례를 따르는 것을 선택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관습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유 없이 따르는 관습이 결국 악습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군대는 여러 이유로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나는 항상 의문을 품어왔다.
대표적으로 견시 임무를 위한 항해 당직은 가장 먼저 기술이 대체할 수 있는 업무다.
견시란, 갑판병이 함교 밖으로 나가 배 주위에 무엇이 보이는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임무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문제 1) 전문성의 부재
견시 임무는 매우 중요하지만, 배 운용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병들이 수행한다.
따라서 낯선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 2) 잦은 실수
어망 부이를 실수로 보고하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국 배가 피하지 못하고 그물망에 걸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 3) 의사소통 실패
가스 터빈 엔진을 가동한 상태로 빠르게 전진하는 동안에는 바람이 강하게 분다.
바람 소리와 엔진 소리 때문에 보고를 해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람들은 communication-cost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실제 적 군함의 유도탄이 접근하는 상황에서, 의사소통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 ‘몇 초’라도 지연된다면 상당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문제 4) 경험적 직관에 의존하는 보고 체계
이게 가장 문제다.
갑판병들은 지나가는 상선의 정확한 방위와 거리를 모른다.
또한 상선인지 어선인지 아니면 적 군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저 ‘경험적 직관’에 의존할 뿐이다.
많은 갑판병들이 ‘거리가 1000마일쯤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어망 부이를 보고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틀렸다.
날씨에 따라 보이는 것보다 더 멀리 있는 경우도, 가까이 있는 경우도 있다.
체계적인 보고 프로세스를 갖춰야 하는 하나의 부대가 병들의 감에 의존하여 보고를 받아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방치한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이것은 불필요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기술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고, 평소에 자율주행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Tesla의 auto-pilot 모드에서 힌트를 얻었다.
여러 개의 카메라 센서를 360도에 장착한 후, 전처리된 실시간 영상 데이터 속 객체를 인식 & 분류해서 정확한 방위와 거리를 계산하여, 실시간으로 함교에 보고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대 효과는 이렇다.
1. 견시 임무를 위한 인수 인계를 할 필요가 없다.
2. 학습된 모델의 성능이 높다면 장애물을 놓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3. 의사소통은 함교 내부의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4. 인간의 직관이 아닌, 인공지능이 data-driven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절감한 갑판병 인력을 ‘더 높은 생산성이 요구되는 일’ 혹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작업들’에 배치된다면, 결과적으로 함대의 전투력이 대폭 상승될 것이라 믿었다.
사실 이것을 떠올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갑판병들은 물이 얼어버릴 정도로 겨울의 추운 날씨와 살이 금방 타버릴 정도로 여름의 뜨거운 날씨에 그대로 방치된다. 극한의 온도를 버텨야 한다.
절대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 이상 미래의 갑판병들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 self-motivated되는 일임에 분명했다.
AI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는 수많은 분야가 존재한다.
그 중, 디지털 이미지나 영상 속 객체를 분류해서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AI는 바로 ‘Computer vision’이다.
computer vision은 기계의 시각을 담당한다.
이 기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기계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아야 한다.
(Computer vision 분야의 대가이신 Fei Fei Li 교수님께서 쓰신 책 ‘The worlds I see’ 를 추천한다, 아쉽게도 번역본은 없다..)
그래서 난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나는 행정실로 내려가서 Coursera에서 Andres Ng 교수님의 강의를 보며 Machine learning과 Deep learning를 공부했다.
물론, computer vision을 활용한 자율 주행 기술은 유의미한 수준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대폭 개선한다는 점에서 엔지니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충분히 멋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 기술이 없다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4만 명의 환자들이 수술 중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의료 사고는 사람의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연구원들도 있다.
더 많은 학생들이 AI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교수님들도 있다.
이제는 연구한 지식으로 industry에서 인간을 위한 AI로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싶다.
단순히 기술을 위한 연구가 아닌, '사람을 위한 연구' 말이다.
AI가 소외된 사람들의 기술적 불평등과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면, 당장의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